노래방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 아닌 신분으로 학교 근처 주점에 가서 소주를 마실 때면 의례 무반주로 그냥 노래를 부르던 때가 너무나 그리워진다.
감상에 젖은 좋은 노래가 나오면 다른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도 같이 따라 부르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멋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술에 취한상태에서 본인의 18번은 거의 예외 없이 김광석의 “기다려줘”였다.
그리고 93년 1월 영하 30도가 넘는 상황에서 입대했다.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남몰래 가장 열심히 들었던 노래는 역시 김광석의 곡들이었다.
군에서 일년을 보내고 난 뒤 다시 쌀쌀한 겨울바람이 군바리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던 그 즈음 난 휴가를 나왔다. 그 때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단 한가지 사건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영풍문고에서 김광석 콘서트 안내문을 보고 표를 사서 영국대사관 앞에 위치한 세실극장에 혼자서 찾아간 것이다.
당시 김광석은 잘 나가는 언더그라운드 가수였고 난 그 사람의 애수의 찬 노래를 즐겨 듣는 군바리였다. 예상대로 콘서트장은 만원이었고 사람들은 김광석의 주옥같은 노래에 열광했다. 물론 군바리도 맨 앞자리에서 같이 그 흥분된 순간을 음미했다.
문제는 군바리의 어쩔 수 없는 소외감과 김광석의 사랑과 그에 따른 상처나 고통, 연민에 대한 가사가 너무도 절실해서 울먹울먹 하는 것이었다. 누가봐도 군바리인데 노래가사에 그런 약한 모습을…
콘서트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김광석은 팬들에게 신청곡을 받았다. 대부분 슬프디 슬픈곡의 제목들이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왔고, 나 역시 앞자리에서 나의 18번인 “기다려줘”를 불러달라고 염치불구하고 소리쳤는데 결과는 의외였다.
그가 부른 곡은 리스트중에서 가장 밝은 노래중의 하나인 “나의 노래”였다. 김광석은 그러한 선택에 대한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슬픈 노래를 좋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날들”이란 곡의 가사를 인용하면서, “왜 가사에 나오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은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기쁨을 느끼는지 모르겠다”고 투정조로 읊조렸다.
김광석 자신은 개인적으로 너무 감상적이고 애상적인 노래를 부르는데 취미가 없으며 앞으로는 슬픈 노래보다는 “나의 노래”처럼 희망에 가득찬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군바리에게는 너무나 눈물겹도록 희망적인 메시지였었다. 그래 상황이 힘들어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밝은 노래를 부르자. 그렇게 살아야지라고 돌아오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세월은 흘러서 95년 초 제대가 다가왔을 무렵에도 김광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수”였고 그의 슬프고, 기쁘고,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노래들은 항상 내 주변에서 맴 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그의 노래가 많은 힘을 주었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겠다는 김광석은 96년 1월 돌연 자살을 시도해 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렇게 밝고, 희망에 찬 노래를 갈구하던 가수의 자살은 내게 충격 그 이상의 것이었다.
왜 죽어야만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명가수였고 자신의 입지도 다져진 사람이었는데…
96년 1월 겨울, 미국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생활하기 위해 떠나면서 그의 테이프를 모두 가져갔다. 그리고 거의 항상 그의 노래를 들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노래를 들을 때 마다 가슴이 너무 아팠지만 외국생활이 주는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마치 중독된 것처럼 그의 노래를 들었다.
지금도 나는 김광석의 모든 앨범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그의 명곡들을 들으면서 대학 때 친구들과 술좌석에서 부르던 “기다려줘”를 다시 불러보기도 하고, 군대에서 혼자 외로울 때 부르던 “너에게”를 들으면 옛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밝음과 어두움. 감상주의와 희망. 삶과 죽음. 그러한 대립되는 이미지들이 사실 김광석의 노래 속에는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슬픈 가사이고 애절한 음조이지만 그 나름의 형식미와 아름다움이 있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비관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결국 김광석에게 사랑이라는 주제를 노래로 승화시키는 작업자체는 무척 힘겨웠을 것이다. 대부분의 노래가사가 상처 난 사랑,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이나 안타까움으로 점철되어 있으니…
그러나 난 그런 김광석의 지극히 감상주의적이고 애절한 노래가 좋다. 인간의 본연적 감정에 가장 솔직한 표현이기에 그의 애상적인 노래가 마음에 가까이 다가온다. 아니면 나도 감상주의자의 기질이 있어서 그럴까?
외롭고 슬플 때면 언제나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싶다. 그리고 벌써 10년도 넘게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은 “기다려줘”를 부를 때 정말 가슴속 깊이에서부터 슬픔이 솟아오를 때만이 김광석이 부르던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 그도 하늘나라에서 “기다려줘”를 부르면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으면서 노래를 부를까?
노래방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 아닌 신분으로 학교 근처 주점에 가서 소주를 마실 때면 의례 무반주로 그냥 노래를 부르던 때가 너무나 그리워진다.
감상에 젖은 좋은 노래가 나오면 다른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도 같이 따라 부르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멋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술에 취한상태에서 본인의 18번은 거의 예외 없이 김광석의 “기다려줘”였다.
그리고 93년 1월 영하 30도가 넘는 상황에서 입대했다.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남몰래 가장 열심히 들었던 노래는 역시 김광석의 곡들이었다.
군에서 일년을 보내고 난 뒤 다시 쌀쌀한 겨울바람이 군바리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던 그 즈음 난 휴가를 나왔다. 그 때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단 한가지 사건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영풍문고에서 김광석 콘서트 안내문을 보고 표를 사서 영국대사관 앞에 위치한 세실극장에 혼자서 찾아간 것이다.
당시 김광석은 잘 나가는 언더그라운드 가수였고 난 그 사람의 애수의 찬 노래를 즐겨 듣는 군바리였다. 예상대로 콘서트장은 만원이었고 사람들은 김광석의 주옥같은 노래에 열광했다. 물론 군바리도 맨 앞자리에서 같이 그 흥분된 순간을 음미했다.
문제는 군바리의 어쩔 수 없는 소외감과 김광석의 사랑과 그에 따른 상처나 고통, 연민에 대한 가사가 너무도 절실해서 울먹울먹 하는 것이었다. 누가봐도 군바리인데 노래가사에 그런 약한 모습을…
콘서트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김광석은 팬들에게 신청곡을 받았다. 대부분 슬프디 슬픈곡의 제목들이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왔고, 나 역시 앞자리에서 나의 18번인 “기다려줘”를 불러달라고 염치불구하고 소리쳤는데 결과는 의외였다.
그가 부른 곡은 리스트중에서 가장 밝은 노래중의 하나인 “나의 노래”였다. 김광석은 그러한 선택에 대한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슬픈 노래를 좋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날들”이란 곡의 가사를 인용하면서, “왜 가사에 나오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은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기쁨을 느끼는지 모르겠다”고 투정조로 읊조렸다.
김광석 자신은 개인적으로 너무 감상적이고 애상적인 노래를 부르는데 취미가 없으며 앞으로는 슬픈 노래보다는 “나의 노래”처럼 희망에 가득찬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군바리에게는 너무나 눈물겹도록 희망적인 메시지였었다. 그래 상황이 힘들어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밝은 노래를 부르자. 그렇게 살아야지라고 돌아오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세월은 흘러서 95년 초 제대가 다가왔을 무렵에도 김광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수”였고 그의 슬프고, 기쁘고,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노래들은 항상 내 주변에서 맴 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그의 노래가 많은 힘을 주었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겠다는 김광석은 96년 1월 돌연 자살을 시도해 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렇게 밝고, 희망에 찬 노래를 갈구하던 가수의 자살은 내게 충격 그 이상의 것이었다.
왜 죽어야만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명가수였고 자신의 입지도 다져진 사람이었는데…
96년 1월 겨울, 미국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생활하기 위해 떠나면서 그의 테이프를 모두 가져갔다. 그리고 거의 항상 그의 노래를 들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노래를 들을 때 마다 가슴이 너무 아팠지만 외국생활이 주는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마치 중독된 것처럼 그의 노래를 들었다.
지금도 나는 김광석의 모든 앨범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그의 명곡들을 들으면서 대학 때 친구들과 술좌석에서 부르던 “기다려줘”를 다시 불러보기도 하고, 군대에서 혼자 외로울 때 부르던 “너에게”를 들으면 옛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밝음과 어두움. 감상주의와 희망. 삶과 죽음. 그러한 대립되는 이미지들이 사실 김광석의 노래 속에는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슬픈 가사이고 애절한 음조이지만 그 나름의 형식미와 아름다움이 있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비관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결국 김광석에게 사랑이라는 주제를 노래로 승화시키는 작업자체는 무척 힘겨웠을 것이다. 대부분의 노래가사가 상처 난 사랑,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이나 안타까움으로 점철되어 있으니…
그러나 난 그런 김광석의 지극히 감상주의적이고 애절한 노래가 좋다. 인간의 본연적 감정에 가장 솔직한 표현이기에 그의 애상적인 노래가 마음에 가까이 다가온다. 아니면 나도 감상주의자의 기질이 있어서 그럴까?
외롭고 슬플 때면 언제나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싶다. 그리고 벌써 10년도 넘게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은 “기다려줘”를 부를 때 정말 가슴속 깊이에서부터 슬픔이 솟아오를 때만이 김광석이 부르던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 그도 하늘나라에서 “기다려줘”를 부르면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으면서 노래를 부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