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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유치원을 꼭 보내야 하는가

나름대로 언어학, 외국어교수법에 관한 이론을 살펴 본 결과 내려진 결론은 언어의 습득과 나이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본인이 배우려는 의지를 가지고 노력할 경우 기본적인 의사소통 단계를 넘어 상당한 수준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물론 어릴 수록 언어를 더 잘배운다는 일반론은 여기서 다른 이야기다. 이것은 마치 어린 사람이 모든 측면에서 나이 든 사람보다 학습의 속도가 빠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들 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일단 노화현상이 진행되면 기억력도 예전같지 않고 스태미너도 점점 부족해지기 때문에 40대나 50대가 20대의 학습 집중력을 따라갈 수는 없다.

어릴 때 외국어를 배우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발음이라는 ‘주장’이 있다. 어느 정도 혀가 굳어진 다음에 교정이 쉽지 않기 때문인데, 이것도 완전히 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주말에 가족이 식사를 하는데 이제 4살인 조카가 있었다. 주변에서 가끔 재미삼아 영어단어를 가르쳐 준다고 하는데, 내가 발견한 것은 조카가 에스(s) 발음을 하지 못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에스 발음을 보여주고 따라하게 했지만 본인이 잘 안되니까 그냥 에스를 빼고 단어를 발음하는 것을 보고 웬지 우리나라 열성 부모들이 이걸 제대로 알까 걱정이 들었다.

그렇다, 어리다고 외국어 발음이나 엑센트를 쉽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어른도 아이들과 같은 시간을 투자하면 사실 아이들 보다 훨씬 정확한 발음을 습득할 수 있다.

따라서 나이가 어리니까, 그래서 발음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무턱대고 아이에게 외국어 교육을 시키는 것은 자기 자식의 정상적인 지적발달을 저해하는 무책임한 실험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자녀에게 조기 영어교육을 시키는 한국의 부모가 제대로 최근 언어학이나 언어교수이론을 알고 시키는 경우가 거의 없음을 고려하면 앞으로 상당히 많은 부작용이 나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어린 아이들에게 언어학습은 그야말로 직업(full-time job)이다. 하루 종일 열과 성을 다해서 주변 가족들과 상호작용하면서 계속 생존을 위해 배워나가는 그들의 궁극의 과제이자 생활의 핵심이다. 아무리 모국어라도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어린 아이들이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은 엄청나다. 하루 종일 하나의 발음에 매달려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단순히 발음뿐 아니라 해당 모국어 단어에 해당하는 개념도 익혀야 한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상당하리라 생각된다. 하물며 외국어를 배울때의 스트레스야!

주변에서 영어유치원에 보내도 되냐는 질문을 받으면 일단 잘 생각해보시라고, 아이들이게 너무 큰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을 하는 편인데, 그 이유가 바로 모국어를 생활속에서 배우는 것만해도 시간이 빠듯한 언어학습을 업으로 하는 어린이들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우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잔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 본인이 외국어에 대한 학습동기유발이 되어있다면 모르지만 그저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에게 원치 않는 엄청난 심리적인 짐을, 그것도 어른인 부모도 하기 싫어하는 언어학습을 강요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주 어린 나이에는 외국어에 대한 강요보다는 삶의 다양한 방식에 대한 자연스러운 노출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림도 좋고 음악도 좋다. 한글로 된 좋은 내용의 동화책도 좋다.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막 확장하는 뇌를 좋은 방향으로 자극하는 최선의 방식이고 향후 본인의 의지로 청소년기 이후 스스로 어학공부를 할 때 최대의 자산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측정해 본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영어유치원에서 중학교까지 배운 영어의 경우 고등학생이 철들어서 제대로 공부하면 3개월이면 모두 따라 잡을 수 있다. (난 고등학교 1학년에 되어서야 제대로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이후 영어로 먹고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철들어서, 정말 나이 먹고 직장 다니면서, 없는 시간을 쪼개면서 자신의 필요와 동기에 따라 하는 어학공부에서 진짜 승부가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