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과 울면서 겨자먹기

비타민을 잘 섭취하면 몸에 좋다고 하기에 그 유명한 비타XX를 사러 약국에 가면 열에 아홉은 짝퉁을 내놓는다. ‘비타’까지만 같고 나머지는 살짝 틀리게 이름 지워진 짝퉁 비타민 음료들. 분명히 고객은 정확한 브랜드를 말하면서 상품을 요구했지만 더 높은 마진을 주겠다는 로비에 넘어간 많은 약사들은 모른 척하면서 짝퉁을 들이민다. 그 얄팍한 속보이는 짓이 얄밉지만 웬만한 고객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짝퉁을 감내하면서 마신다. 500원 가지고 더운 날에 싸우기도 뭣하지 않은가?

디지털 카메라 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 중 하나는 바로 캐논의 ESO 10D라는 제품이다. 꽤 가격이 나가는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검은색 보디와 견고한 디자인 덕분에 출시된 지 일 년이 넘었음에도 품귀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폭발적인 수요 대비 공급이 워낙 달리다 보니 여기서도 장삿속에 피해를 보는 소비자가 속출한다.

미리 예약을 하고 한 달을 기다려도 총판이나 기타 숍에서는 정작 예약자에게 물건을 잘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예약자에게는 적정가로 팔아야 하지만 몸이 달은 현찰 박치기 손님에게는 더 많은 마진을 챙기면서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남대문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사러 가면 인기 모델의 경우 보디만 달랑 산다고 하면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다. 렌즈나 액세서리를 대량으로 사면 그나마 숍주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친절한 척을 한다. 이런 얄팍한 속을 알면서도 손님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손님 대접을 포기하면서 물건을 사러 간다.

그리고 또다른 짝퉁이 있다. 맞벌이를 하는 필자의 경우 국민연금은 애물단지 그 이상이다. 현재 제도상으로 보면 둘이서 허리가 휘어라고 월급에서 국민연금을 제하고 있지만 결국 연금을 받을 때는 한 명분만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자선 사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자기 능력 것 낸 만큼만 받는 것이 공적인 정책의 기본이 아닐까? 문제는 방만하고 엉성한 연금 공단의 운영을 고려하면 과연 맞벌이의 경우 연금의 반을 포기하더라도 정말 남은 반이나마 제대로 받을까 하는 것이다.

현재 수입이 없는 부모님에게 걸핏하면 독촉장이나 보내는 국민연금공단을 보면 정말 지금까지 낸 연금을 모두 회수하고 싶다. 국가가 개인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거의 조폭처럼 돈을 뜯어가는 것과 다른 게 뭐가 있는가? 도대체 그렇게 불공평하게 연금을 운영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하지만 힘없는 서민은 그런 불합리함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계속 착취당한다.

파올로 코엘료의 베스트 셀러 ‘연금술사’를 보면 현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이 책이 한국독자들에게 그렇게 인기 있는 이유는 어쩌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절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꿈만은 짝퉁이나 반토막으로 꾸지 말았으면 한다.

 

웃음을 멈추지 않게 하는 약 구함

자주 웃는 사람은 과연 정말로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행복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일까? 요즘처럼 황사로 하늘이 뿌옇게 흐려지고 바람으로 머리에 먼지가 스멀스멀 스며들어오면 차라리 억지로 웃게 만드는 약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인간의 겉과 속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한껏 웃고 있는데 나쁜 기운이 들어오기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희망적인 의도에서라도.

요즈음 저녁에 케이블TV에서 방송되고 있는 일본드라마 ‘속도위반 결혼’(できちゃった結婚, 2001)은 일단 재미있다. 보다 보면 웃음이 난다. 만화 같은 설정도 그렇고 전개방식도 흥미롭다.

주목할 점은 남자주인공 타케노우치 유타카(竹野內豊)가 일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물론 어느 드라마에서나 귀하게 취급 받는 주제이기 때문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일에 목숨을 걸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취약한 것은 일이 아닌 다른 것 (예를 들면 가족의 사랑)에 집중하는 것이다.

상대역인 히로스에 료코(廣末凉子)와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나가는 것,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자식이 성장하고 다른 가족구성원과 공동체를 이루어 나간다는 것.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직업전선에서의 변화와 가정과의 사이에서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드라마상에서의 답은 진부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매일 선택하고 있는 수많은 한국의 남성과 여성들에게는 그리 진부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말로는 가정이라는 핑계를 대지만 시간배분에 있어서는 결국 자신의 일과 가정사이의 선택에서 일쪽으로 기우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하지만 일이라는 것이 자신의 투자시간이나 노력만큼 보상을 주는 것일까?

마츠 다카코(松たか子) 주연의 드라마 ‘언제나 둘이서’(いつもふたりで, 2003)에는 아무리 높은 위치에 올라간 사람일지라도 한번의 실수로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는 인물을 보여준다. 43세의 거물TV사회자로 분한 니시무라 마사히코(西村雅彦)는 항상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시청률을 높이고 바람을 피우지만 그도 한번의 치명적인 실수를 하면서 몰락하게 된다. 결국 자연이 인간의 성공이나 실패에 무관심하다라는 것은 다른 개념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

흥미로운 것은 일이나 공상이나 감상에 젖어있는 남자들에게 변화와 영감을 제공하는 것은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재미소설가 이창래의 ‘A Gesture Life’의 표리부동한 모습을 견지하는 주인공 하타는 한국, 일본, 미국의 정체성 속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결국 정신대로 끌려간 한국여성, 입양한 한국인 딸, 늙어서 사귀게 된 애인이라는 여성들에게서 변화의 끈을 찾게 된다.

하타는 일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맞춰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상당한 노력을 하는데 결국 그 대상만이 조금 바뀌었을 뿐 인간이 집착하려고 하는 그 구조는 동일한 궤적을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더니즘의 대가 조셉 콘라드의 장편소설 ‘Victory’도 애처로운 남성상이 하나 나오는데 하이스트라는 이 남자주인공은 세상을 무시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염세주의자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레나라고 하는 여성으로 인해 세상과의 악연을 불러일으키고 스스로 추구한 고립에서 파멸로 이어지는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 변화를 촉발시키는 것은 바로 인간의 겉과 속의 메워질 수 없는 간극. 주변 인물들과 주요 인물들간의 의사소통은 계속적으로 엇갈리는데 이는 겉으로 표현되는 모습과 실제 본인들의 진심이 엉뚱한 곳을 교차하기 때문이다. 매번 ‘솔직’한 대화를 원하는 우리들은 결국 남에게만 그 솔직성을 요구하고 자신에게는 항상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또 다른 은둔자로 나오는 이는 ‘언제나 둘이서’에서 주연보다 멋진 조연인 구로사와 토시오(黑澤年雄). 58세의 ‘무라코시서점(村越書店)’의 주인으로 분한 그는 완고하고 출판계에 파격적인 발언을 일삼아 주목을 모으는 인물역에 정말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드라마상에서라는 작위성은 있지만 마츠 다카코가 가져온 변화는 그로 하여금 새로운 결정을 하게 만든다. 당돌한 그 여성이 은자흉내내기 놀이에 빠져있는 남자를 움직이게 만든 대사: “(당신은) 빛이 어두워져서 눈이 먼 것이 아니라 빛이 너무 밝아서 눈이 먼 것.”

일이건 가정이건, 고립이건 변화이건, 궁극적인 선택은 결국 개인이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내리기 마련이다. 어느쪽이 사실 중요한가라는 문제보다 주어진 시간에서 그 비율을 정하는데 있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 관건이 아닐까? 불행히도 그러한 균형감각은 항상 치명적인 변화가 자신을 엄습해 왔을 때 비로소 생긴다는 것이다.

벌써 10년도 넘은 것으로 기억되는 머라이어 캐리의 뮤직비디오 중에서 유난히 좋아하는 노래는 바로 ‘I’ll be there’이다. 지금의 원숙미와는 달리 당시의 MTV에서 마련한 라이브 부대에서 열창을 하는 그녀는 약간 투박하지만 가슴속에 뭔가를 뭉클하게 만드는 투박함이 넘쳐 난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순수한 열정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변화의 소리들. 그래서 그런지 노래하는 내내 웃음이 그녀의 얼굴에 댕글댕글 달려있다. 바로 그 웃음을 내 퉁퉁 부은 얼굴에도 걸어놓고 싶다.

 

Shall We Dance?

일본 영화 “Shall We Dance?”를 보면 주인공이 사교댄스에 열중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영화적인 설정인 로맨스를 떠나서 나른함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 무언인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취미 생활을 발견한다는 것은 사실 부러운 일이다.

일본의 직장인만 몸과 마음을 바칠 취미 생활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상황 역시 암울하기 그지 없어 뭔가 새로운 탈출구나 도피처가 필요하다.

정치는 삼류를 벗어나 삼천포로 빠졌으며 (노무현 대통령 이하 정치인 여러분 감사합니다. 언제나 그대들을 보고 있으면 제가 그나마 인간에 가깝다라는 점을 느낍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온갖 중요 현안이 꼬이고 얽혀서 도무지 해결 방도가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 핵무기, 원전 수거 관리 센터, 노사 갈등, 이라크 파병, 부동산 투기 등등 하나같이 어렵기만 한 문제들이다.

또 한 가장 중요한 경제가 계속 불안한 상황을 보이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직장인들은 언제 자신도 구조조정에 칼날에 베일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다. 이제 30대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흉흉한 말이 언론에 유통되고 있으니 참 각박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와중에 도무지 언제 받을지, 혹은 정말 되돌려 받기나 할지 심히 의심되는 ‘돈 먹는 하마’ 국민연금과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데 정신 없는 의료 보험료. 이제 새로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 따르면 재산세와 종토세도 더 올라간다고 하는데 이래저래 직장인은 밥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렇게 혈세를 짜서 국가가 한일은 무엇인가? 부실 경영과 공금 유용이나 일삼는 기업들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수조 원을 공적자금으로 바치는 한심한 일이나 하고 있지 않는가? 금융 기관이 부실 대출을 해서 망하기 일보직전이면 이를 망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세금을 투입해서 살리려고 하면 시장 원칙을 위배하고 도덕적 해이만 부를 뿐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 간단한 원리를 무시한 채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세금을 낭비하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

신용카드사의 부실이 문제가 되었을 때도 정부는 전혀 도와줄 필요가 없었다. 신용카드사의 방만한 경영과 무식하고 무모하기 그지 없는 확장 정책은 당연히 거품을 유발하고 언젠가는 그 거품이 꺼질 때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다. 왜 정부가 이런 단기적인 돈에 눈이 어두워 길거리에서 신용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대학생에게까지 카드를 만들어 주고 현금 서비스에 열을 올렸던 신용카드 회사를 도와주어야 하는가?

일본도 금융 기관들의 부실을 정부가 계속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도와주려고 하다가 오히려 경기 침체의 주름살만 더욱 늘어나게 했고 문제만 키운 것처럼 한국 정부도 잘못을 저질러 이제 죄과를 치러야 하는 금융 기관들에게 쓸데 없는 혈세를 퍼붓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 무너질 회사는 무너지게 하면 된다. 경영을 잘못하면 모두 죽는다라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는가?

아침에 신문을 읽으면 항상 희망보다는 절망이, 기쁨보다는 짜증이 나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절감한다. 이민을 가려는 사람들의 심정,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우리나라가 참 살기 어려운 나라임에 틀림없다. 서민들은 늘어만 가는 세금과 한숨만 나오는 경기 침체의 여파로 숨이 막힐 지경인데도 정치인들은 눈도 꿈쩍 안 하고 수백억원씩 챙겨 흥청망청 잘도 쓰면서 놀아나고, 대기업은 매번 손해 나는 장사라면서 물건값이나 서비스료 내리는 데 인색하게 굴면서 그런 거액의 정치자금은 잘도 갖다 바치고, 대통령은 자기 일 못해 먹겠다고 투정이나 부리는 나라에 살고 있다.

필자의 친구는 얼마 전부터 “Shall We Dance?”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사교 댄스에 빠져서 업무만 끝나면 춤추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자신의 개인 생활의 대부분을 춤에 투자하고 있다는 데 부러웠다. 이렇게 힘든 한국의 현실을 춤이라도 추면서 잊을 수 있는 그 친구가 세상을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멋진 ‘댄스’는 어차피 익히기 어려우니까 집에서 머리를 전후좌우로 죽도록 흔들어 어지러운 생각이 없어지는 춤이라도 춰야겠다.